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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방 부르스’. 심상치 않은 느낌의 단어다. 사실 ‘부르스’가 뭘 뜻하는지는 정확히 몰라도 인생 한방 식의 한탕주의의 어감을 가진 단어임에 틀림없다. 이 범상치 않은 느낌의 단어 ‘한방 부르스’가 ‘앙큼 코미디 스탠딩가이스’의 큰 줄기를 알려주는 말이다.

 이 연극은 자칭 주부 문화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만수와 병태 그리고 그들에게 음식 배달을 왔다가 같이 합세한 중국집 배달원까지 세 명의 남자의 이야기다. 주부 문화 사업이라는 알듯말듯한 직업은 실은 성인 무도회장 제비를 그들끼리 지칭하는 말이다. 두 명의 제비에 그들의 아지트에 배달 왔다가 제비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을 현실로 받아들인 한 명의 중국집 배달원이 꿈꾸는 안생역전. 물론 그 방법은 주부 문화 사업을 통해서다. 그리고 때 마침 미모의 젊은 여자 집주인의 등장으로 그들의 꿈을 현실로 이루어지는 듯싶다.

 연출자가 개그맨인 탓인지 전체적인 이야기는 별로 복잡하지도 어렵지도 않는 줄거리다. 그 덕분에 이야기를 통해 즐거움을 얻는 연극보다는 마치 개그콘서트 마냥 순간순간 벌어지는 상황으로 웃음을 자아내는데 더 탁월한 연극이었다. 거기에 비록 귀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극 중 재미를 증가시키는데도 일조하는 욕설의 난무는 이야기를 통한 즐거움이 더 중시되었다면 굳이 지금 만큼 중요성이 크지 않지 않을까 싶었다. 또한 상황상황에 맞추어 적절히 구사하기는 했지만 과하다는 느낌 역시 지울 수 없었던 애드리브 역시 이야기의 전개로 즐거움을 줬다면 그 사용빈도를 줄이고서도 지금 못지않게 좋은 연극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남자 세 명이 극에서 주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아트’와 유사한 면이 있는 듯 싶기도 하지만, ‘아트’의 주인공 세 명이 보여주는 그들만의 특색이 ‘스탠딩가이스’에서는 그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아트’와의 비교는 좀 무리가 있다는 건 지나치지 않다.

 난무하는 욕설에 극의 전개에 따른 재미의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많이 남지만, 그래도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잠시 잊고 즐겁게 웃을 수 있기에는 더 없이 좋은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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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서 문득 생각이 들었다. 왜 역사책을 읽을까? 그간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옛날이야기에 대한 순전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나 혹은 역사를 통해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지혜를 얻고자 하는 욕구가 역사에 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다. 그저 그랬던 내 부족한 역사의식이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를 보면서 조금 바뀌었다. 역사를 통해 사람의 순리를 배울 수 있다는 뉘앙스 정도가 바뀐 부분이다. 사람이면 누구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겪기 마련이고 역사는 다양하고 수많은 사람들의 흥망성쇠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그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보다 조금 앞선 부분도 조금 뒤쳐진 부분도 그것들로 인해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내 속도에 맞추어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생각할 수 있게 해 준다.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는 작은 신생국가 로마가 세력을 확장하며 포에니 전쟁을 통해 원로원과 일반 시민이 하나로 똘똘 뭉쳐 카르타고를 물리치는 시련을 이겨내고 강력한 패권국가가 되고난 이후에 발생한 내부적 분열에 관한 이야기다. 흥망성쇠의 의미 그대로 원로원과 집정관과 시민집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는 것으로 계층 간의 불화를 극복하고 사회적 안정을 이루었던 로마가 위급한 전쟁에서 어쩔 수 없이 선택했던 원로원으로의 권력 집중이 종전 후에도 그대로 정책으로 존속하게 되면서 원로원의 권력은 필요 이상으로 비대해졌다. 같은 로마 시민이라도 원로원 계급에 속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고정되어갔으며 전쟁의 거듭된 승리로 인해 광대한 토지와 값싼 노동력인 노예의 수가 늘어나면서 로마의 시민들은 자유경쟁에서 점차 떨어져나갔다. 결국 병역을 지지 않는 무산계급으로 전락한 그들은 자신의 존재이유를 잃어가면서 그들의 정신적인 타격은 커지고 사회는 점차 불안정해져갔다.

 여타의 국가였더라면 이러한 사회적 불안은 결국 나라의 멸망으로 종결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을 텐데, 스스로 귀족의 계급에 속해 그 속에 안주하는 것만으로도 일신의 평온을 보장 받았을 그라쿠스 형제가 같은 인물이 등장해 승리를 쟁취함으로 인해 간과하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혁을 통해 해결하려는 의지를 통해 로마가 오랜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힘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이 실패함으로 내적 문제점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시기를 놓치고 그래서 마리우스와 술라 그리고 폼페이우스에 이르기 까지 조선시대 우리나라의 당파 싸움에 비견될 정도로 서로 나뉘어 숙청하는 내적 분열을 겪게 된다.

 외부의 적에 온통 힘을 기울인 결과 내부의 적을 안게 된 로마, 이제까지 평형을 이루었던 모든 사회적 균형은 깨지고 5백 년에 걸쳐 이루어온 사회제도도 제 기능을 못하게 된 로마의 이야기가 바로 ‘로마인 이야기 3: 승자의 혼미’ 편이 잘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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