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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이 흐르면 그만큼 기억은 흐릿해지기 마련이다. 특별히 인상 깊었던 것이라면 시간의 흐름과 흐릿해지는 기억 속에서 좀 더 자유롭지만 그렇다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연극 ‘사랑을 주세요’를 관람한지가 족히 한 달이 넘었다. 무엇이던 세심하게 기록해 두는 법이 없는 내 습관 탓에 연극 ‘사랑을 주세요’도 극을 관람할 당시 내가 가졌던 세세한 느낌과 아쉬움은 흐릿해진 기억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비록 영단어 'Detail‘이 가진 세심함은 사라졌지만 대신 다른 영단어 ’Impressive'가 가진 선 굵은 느낌의 인상적인 특징만 살아남았다고 할까.

 연극 ‘사랑을 주세요’를 집약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말은 ‘Yonkers 가족 이야기’ 정도면 충분하다. Yonkers가는 병으로 죽은 엄마의 병원비를 갚기 위해 할머니에게 맡기고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아버지 에디와 그의 두 아이 제이와 아리, 페병의 후유증으로 관객까지 깜작 놀라게 목소리를 가진 거트 고모와 건들건들 건달의 이미지가 제대로인 삼촌 루이, 정신적으로 미성숙 특징적인 막내 고모 벨라와 할머니까지 7명이다. 이들 7명 사이의 가족 이야기가 바로 연극 ‘사랑을 주세요’의 줄거리다.

 이런 가족이 소재인 공연에서 관객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은 뚜렷하게 나타나는 각각의 개성과 그것과 어울러져 나타나는 그들 간의 갈등이다. 이러한 흥미 요소는 이 ‘사랑을 주세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내가 흥미로운 건 벨라와 할머니였다.

 과장된 행동과 말투와 이와 함께 표현하는 기쁨과 슬픔의 감정이 벨라의 겉모습이었다면 자신을 안아주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여자로써의 모습은 극의 후반에서야 알 수 있는 벨라의 속모습이었다. 쉽지 않은 배역을 표현하기 위한 배우의 노력이 그대로 관객에게도 전해져 많은 사람의 호평이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뿐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미성숙함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의미를 찾고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하려는 극 중 모습 또한 관객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로 배우 노현희에 대해서는 언젠가 토크쇼에서 봤던 ‘십오야’의 인상이 강했는데, 이번에 ‘십오야’의 이미지를 보다 진짜 연기자에 한 발 더 다가간 느낌이어서 기분 좋았다.

 할머니의 경우는 벨라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벨라의 경우는 감정을 표출하는데 치중해야하는 역할이라면 할머니는 강철 같이 강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절대 잘못되었을 리 없다는 굳은 신념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이었다. 험난한 시련을 이겨내고 그 속에서 자신의 가족을 보살피기 위한 어머니로써만이 아니라 험난한 세상에 맞서 당당히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녀를 키워야 한다는 신념 역시 강한 사람이었다. 다만 모든 것이 과유불급인지라 따뜻한 사랑과 강인함을 적절히 더 조절했으면 더 좋았을 걸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거기에 강인함보다는 나약함이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자신의 두 아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아버지 에디와 건들건들 건달이지만 어머니의 속마음까지 이해하는 루이 삼촌 역시 나름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2시간 반이라는 긴 공연 시간 탓에 부분부분 지루함과 열연하는 배우와는 상관없이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약간 지칠 수 있는 공연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관객의 눈높이에 맞춘다는 미명하에 소위 인기 트렌드에만 집착하는 일련의 공연들을 따라가기 보다는 극의 재미와 배우의 열정적이고 뛰어난 연기력을 추구하는 공연이라는 느낌이 강했다는 건 분명한 사실.

 같은 장소 같은 극단의 ‘삼류배우’를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다시 한 번 더 같은 장소 같은 극단의 또 다른 극을 기대하게끔 만드는 공연이었다. 얼마 전 종영했음에도
강.력.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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