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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하기 쉬운 역사 이야기를 작가적 관점에서 비교적 자유롭게 서술해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있는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7권 ‘로마인 이야기 7 : 악명높은 황제들’ 이 지금 이야기 하려는 책이다. 신격 아우구스투스의 유산을 물려받은 네 명의 황제 티베리우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가 7권의 주인공들이다.

 사실 책의 내용을 직접 보기 전, 순전히 ‘악명높은 황제들’이라는 제목만을 봤을 때는 막연히 카이사르나 아구스투스가 만들어 놓은 제국을 망처 버린 폭군들 정도라고 생각했다. 특히 막연히 폭군이라고 알고 있었던 네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라고 막연히 알고 있었던 네로가 포함되어 있는 걸 알고서는 제목이 주는 암시가 내가 가진 생각과 일치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실제 책의 내용은 조금 다르다. 사치와 향락의 대명사처럼 인식하고 있었던 네로를 포함해 다른 세 명의 황제 티베리우스, 칼리쿨라 그리고 클라우디우스 모두 악정만을 일삼은 황제는 아니었다. 물론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투스의 사후 제국으로써 기틀을 마련한 로마가 앞선 두 황제가 이룩한 것 같은 놀라운 업적까지는 아니었지만 모두 선정과 악정을 포함해 로마제국에게는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책에서 첫 머리를 장식하는 황제 티베리우스는 아구스투스에 이어 로마의 경제를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카프리 섬에서의 은둔한 채 10년 동안 황제의 권력을 행사했다. 로마 제국를 다스리는데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수도를 떠나 권력을 행사함으로 인해 수도 시민들에게 평이 좋지 않은 황제로 인식되었다.

 티베리우스에 이어 로마 황제로 등극한 이는 칼리굴라다. 아버지 게르마니쿠스 덕분에 게르마니아군의 절대적 지지를 안고서 24살의 칼리굴라는 황제로 등극했다. 거기에 시민들과 원로원의 열정적인 지지까지 칼리굴라의 시작은 누구 못지 않게 좋은 상태에서 시작했다. 하지만 채 4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 안에 국가 재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고 결국 자신의 친위대인 근위대장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칼리굴라의 뒤를 이은 사람은 클라우디우스 황제다. 별다른 권력욕 없이 역사책을 저술한 학자에서 급작스레 황제로 등극한 클라우디우스는 사실 별 매력 없는 외모와 고지식한 정치로 인기와는 거리가 먼 황제였다. 게다가 아내 메살리나의 적절치 못한 행동과 나라를 통치하는데 효과적이었지만 해방노예였던 인물을 등용해 원로원과 마찰을 일으킨 비서관 정치까지 황제로써 자신의 역할을 비교적 충실했지만 살해당하고 만다.

 클라우디우스에 이어 황제로 등장한 사람은 16살의 소년 네로다. 네로 황제 역시 시작은 로마 시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어머니 아그리피나와의 권력 다툼 중 아그리피나를 살해하고 포파이아와의 결혼을 위해 아내 옥타비아를 살해하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네로는 권력의 근원인 로마 시민의 환심을 잃지 않기 위해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가수로 데뷔하기도 한다. 방화죄 및 인류 전체를 증오한 죄 등으로 기독교인들을 처형하나 로마에 황금 궁전을 지을 목적으로 네로가 방화를 사주했다고 시민들이 믿음으로써 시민의 신뢰를 잃게 되고, 자신을 암살하려 했다는 명목으로 스승이자 협력자였던 세네카를 죽게 하면서 원로원까지 네로를 국가의 적이 되어 버리고 만다. 시민과 원로원의 모든 지지를 잃어버린 네로는 스스로 목숨을 버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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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자면 ‘청(靑)’ 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고서 나는 이 공연이 심청전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그저 현대적 느낌으로 만든 창작 창극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청(靑)’이 판소리 심청뎐을 바탕으로 한 심청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심 상당히 놀랐다. 포스터만 봐도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소리 심청뎐의 느낌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 공연 ‘청(靑)’은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달고 있다.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창을 기본으로 해 서양의 뮤지컬 같은 형식으로 꾸몄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국가브랜드라는 이름이 정말 적절한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안숙선 명창에게 도창 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함이 없지만, 이것은 판소리 심청뎐이 아닌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이름을 단 창극 ‘청(靑)’이다. 판소리 심청뎐이 주는 느낌과는 뭔가 더 차별화 되어야 하고 국가브랜드라는 이름을 달만큼이 되려면, 국민 누구라도 흥겨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어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조차 그 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국가브랜드 공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안숙선 명창이 하는 도창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연출가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 덕에 마치 1부는 판소리 심청뎐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은 인상이 짙다. 게다가 판소리에서 사용되었던 한자어를 바꿈 없이 그대로 사용하여 정확한 뜻을 제대로 이해한 관객, 특히 젊은 관객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뜻풀이가 버거워 계속 자막을 봐야만 했고, 많은 경우 영어 자막을 통해 한자어의 뜻을 유추했다. 같이 간 일행도 공연 후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별 문제 없이 졸업하고 정상적으로 대학 교육 정도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많은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영어 자막 역시 뜻 전달에 너무 치중한 것은 아닌지 싶은 아쉬움 또한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창극 ‘청(靑)’의 원작은 판소리 심청뎐인 만큼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줄거리를 통해 감동을 얻기에는 적당한 공연이 아닌 듯싶지만 대신 어린 시절부터 매우 익숙한 이야기가 어떻게 각색되어 무대에 올라왔는지, 보통 작은 극단에서는 보기 힘든 큰 규모의 무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의상과 배우들의 빼어난 창과 연기가 이 공연 ‘청(靑)’이 주는 즐거움인 듯 하다.

 공연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뺑덕이네의 등장 전후라 할 수 있는데, 1부는 창의 기본을 충실히 무대 위에서 보여 주며,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에 반해 2부는 뺑덕이네가 등장하며 부분부분 마당극 같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뺑덕이네 등장이 공연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준 것 같다.

 우리 것은 정말 소중하다. 한 번 잊어버리면 쉽게 되살리기도 힘들뿐더러 대중화 타협해 그 본질을 흐리는 것이 분명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연이라는 것은 그런 대전제에 앞서 사람들이 함께 흥겹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통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그대로 보이는 공연에 따따부따 말이 많았다. 개인적인 성향 탓에 아쉬움이 더 큰 글이 되어 버렸지만, 공연의 스케일이나 배우 그리고 연주자들까지 전부 수준급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

 기회가 된다면 관람해 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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