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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백하자면 ‘청(靑)’ 이라는 제목을 처음 보고서 나는 이 공연이 심청전이라는 사실을 전혀 눈치 챌 수 없었다. 그저 현대적 느낌으로 만든 창작 창극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전부였다.. 그러다가 ‘청(靑)’이 판소리 심청뎐을 바탕으로 한 심청전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내심 상당히 놀랐다. 포스터만 봐도 내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판소리 심청뎐의 느낌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 공연 ‘청(靑)’은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달고 있다. 우리 고유의 음악이라 할 수 있는 창을 기본으로 해 서양의 뮤지컬 같은 형식으로 꾸몄기 때문일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국가브랜드라는 이름이 정말 적절한지 판단할 수 없었다. 안숙선 명창에게 도창 역을 맡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함이 없지만, 이것은 판소리 심청뎐이 아닌 국가브랜드 공연이라는 이름을 단 창극 ‘청(靑)’이다. 판소리 심청뎐이 주는 느낌과는 뭔가 더 차별화 되어야 하고 국가브랜드라는 이름을 달만큼이 되려면, 국민 누구라도 흥겨이 즐길 수 있는 공연이어서 한국을 찾은 외국인조차 그 흥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진정한 국가브랜드 공연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안숙선 명창이 하는 도창을 쉽게 바꿀 수 있는 연출가가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그 덕에 마치 1부는 판소리 심청뎐이 주된 내용이었던 것 같은 인상이 짙다. 게다가 판소리에서 사용되었던 한자어를 바꿈 없이 그대로 사용하여 정확한 뜻을 제대로 이해한 관객, 특히 젊은 관객이 얼마나 될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뜻풀이가 버거워 계속 자막을 봐야만 했고, 많은 경우 영어 자막을 통해 한자어의 뜻을 유추했다. 같이 간 일행도 공연 후 비슷한 느낌이었다는 것을 떠올려 보면 적어도 대한민국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별 문제 없이 졸업하고 정상적으로 대학 교육 정도를 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많은 관객으로부터 호응을 얻지 않을까 싶었다. 게다가 영어 자막 역시 뜻 전달에 너무 치중한 것은 아닌지 싶은 아쉬움 또한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창극 ‘청(靑)’의 원작은 판소리 심청뎐인 만큼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줄거리를 통해 감동을 얻기에는 적당한 공연이 아닌 듯싶지만 대신 어린 시절부터 매우 익숙한 이야기가 어떻게 각색되어 무대에 올라왔는지, 보통 작은 극단에서는 보기 힘든 큰 규모의 무대와 눈을 즐겁게 해주는 의상과 배우들의 빼어난 창과 연기가 이 공연 ‘청(靑)’이 주는 즐거움인 듯 하다.

 공연은 크게 2부로 이루어져 있다. 공연에서 인상적이었던 인물을 통해 이야기하자면 뺑덕이네의 등장 전후라 할 수 있는데, 1부는 창의 기본을 충실히 무대 위에서 보여 주며, 인당수에 빠지는 심청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에 반해 2부는 뺑덕이네가 등장하며 부분부분 마당극 같다는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관객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뺑덕이네 등장이 공연에 활기를 불어 넣어 준 것 같다.

 우리 것은 정말 소중하다. 한 번 잊어버리면 쉽게 되살리기도 힘들뿐더러 대중화 타협해 그 본질을 흐리는 것이 분명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공연이라는 것은 그런 대전제에 앞서 사람들이 함께 흥겹게 즐길 수 있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믿고 있는 통에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그대로 보이는 공연에 따따부따 말이 많았다. 개인적인 성향 탓에 아쉬움이 더 큰 글이 되어 버렸지만, 공연의 스케일이나 배우 그리고 연주자들까지 전부 수준급이라는 것도 분명한 사실.

 기회가 된다면 관람해 보기를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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