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선 책 ‘눈먼 자들의 도시, Ensaio sobre a cegueira’를 읽기 전에 먼저 영화 ‘눈먼 자들의 도시’를 봤다는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그 덕분에 책을 읽어 보기 전부터 영화를 통해 책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다 알고 있었다. 영화를 함께 본 사람들의 반응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갑자기 눈 먼 상태에 발생하는 것으로 인한 재난 영화라는 이야기였고, 다른 하나는 재난에 집중하기 보다는 극단적 상황에서 일어나는 인간의 탐욕과 비윤리였다. 그래서 책에서는, 재난과 재난으로 발생하는 비인간적 행동을 동시에 주목할 생각을 가지고 읽어 나갔다.
책 속의 이야기는 한 남자가 갑자기 눈이 머는 것에서 시작해 그 남자의 시력이 돌아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작가는 실명의 원인도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이 전염되는 것도 그리고 회복되는 것도 어떠한 합리적 이유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이러한 점은 ‘스토리텔링의 비밀: 아리스토텔레스와 영화, Aristotle’s Poetics for Screenwriters’ 에서 밝힌 대로, 극적인 이야기 전개를 위함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과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튼, 각설(却說)하고, 이야기는 실명이라는 재난으로 인해 실명한 사람들이 격리 수용되고, 그 속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episode)를 통해 전개된다.

하지만 저자는 순전히 실명으로 인해 일어나는 사건을 순전히 기술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이야기 속 에피소드에서 눈이 멀게 됨으로써 모든 사람이 조건이 동일해 지게 되는 것에 작가는 주목하기 때문이다. 눈이 먼 사람들에게 눈이 멀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지위에 있었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소유하고 있었냐는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그들은 모두가 그저 눈먼 사람일 뿐이다. 그러서 일까, 신기하게도 이 책에서는 그 누구도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다. 의사, 의사의 아내, 검은 안경을 쓴 여자, 안대를 한 노인, 눈이 가장 먼저 먼 남자 혹은 눈이 가장 먼저 먼 남자의 부인 같은 식이다. 그 뿐 만이 아니라, 대화와 서술에 대한 구분도 없다. 그야 말로 인간 개개인의 개별성을 찾을 수 있는 요소는 모두다 없애 버린 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아물러 눈이 먼 상태는 사람들에게 인간성(人間性)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한다. 모두가 눈 먼 상태의 어려운 상황이지만, 의식주(衣食住)를 장악함으로써 그들 사이에 착취(搾取)와 비착취(非搾取)의 계급을 만들고 착취자는 비착취자를 억압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尊嚴性)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만약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났다면, 저자는 지금과 같은 명성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존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무의미한 상태가 되어버린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의지하고 존중하는 하면서 공동체가 형성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물론 눈이 멀지 않은 의사의 아내가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녀 역시 자신이 맡아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서나가는 것을 통해, 저자가 혼탁한 세상에서도 살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희망의 끈은 놓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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