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만사(世上萬事)는 결국 소통으로 이루어진다. 그 소통의 대상은 보통 인간이 가진 시각, 청각, 후각, 미각, 그리고 촉각으로 부르는 오감(五感)을 통해 이루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오감 중에서도 사람들은 보통 시각과 청각을 이용해 소통을 한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두 가지 이상의 기관이 보통 사람들의 소통에 사용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그런데 지금 이야기하려는 영화 ‘향수 :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 Perfume : The Story of a Murderer’는 특별한 경우에서도 독특하게 후각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영화는 18세기 파리를 무대로 한다. 흔히들 중세 시대의 유럽을 떠올리면 고풍스러운 자태의 귀족을 떠올리곤 하지만, 기실(其實) 그런 모습으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귀족이래 봐야 아주 극소수일 뿐이었고, 그 특별한 몇몇 사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삶은 녹녹하지 못했다. 영화 속 주인공 장 비티스 그루누이도 역시 그런 사람 중에 하나지만, 그의 상황은 보통의 경우보다 더 좋지 않다. 악취로 가득 찬 생선시장에서 태어나자마자 버려진데다가, 짐승보다 못한 대접을 받으며 자라난 고아원 시절과 노동력의 착취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가죽 공장에서의 작업까지, 태어나면서부터 보잘것없는 인생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그르누이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인간의 한계를 넘어 선 후각 덕분이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르누이는 세상의 모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그의 뛰어난 후각을 통해 세상을 배워간다. 그러던 어느 날 거리에서 우연히 한 여인의 체취에 매료되고는, 그녀의 향기에 취해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르고 만다. 이것으로 여인의 향기에 집착하게 하는 그르누이의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길거리 한 여인의 향기에 매료된 후 그르누이는 어떻게 하면 자신을 매료시키는 향기를 소유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18세기 유럽은 몸에서 나는 체취를 감추기 위해 향수가 유행하던 시대였던 만큼 그르누이도 향수를 통해 자신을 매료시키는 향기를 소유하고자 한다. 그래서 정말 순전히 향기를 소유하고 싶은 강력한 욕망에 때문에 그르누이는 한물간 조향사 주세페 발디니 수하(手下)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운다. 그러나 세상 모든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그르누이에게 발디니가 만족스러울 리가 없다.
여성의 향기에 집착하는 그루누이니 만큼 서로 다른 여인들의 머리카락과 피부에서 그녀들의 향기로운 체취를 향수로 만드는 것이 그에게는 지상 과제다. 그리고 몇 방울의 향수를 만들기 위해 거리의 여자에서부터 수녀, 쌍둥이 자매 그리고 귀족의 딸까지 모두 13명의 여인들이 희생되고, 그들의 체취는 그루누이에게서 향기로 남는다. 하지만, 그루누이의 행각도 계속 될 수는 없는 법.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향수를 만들려는 그루누이지만 결국에는 그의 범죄는 밝혀지고, 결국 투옥되어 교수형에 처해진다. 하지만, 그가 만든 매혹적인 향수는 그의 교수형을 구경하기 위해 모인 모든 군중들의 불안한 심리를 자극하고 그들의 영혼마저 뒤흔들어 놓으면서, 그루누이는 어느새 유유히 사라지고 없다.
영화는 세계적 베스트 셀러인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덕분에 이야기가 조밀할 뿐만 아니라 재미있다. 거기에 화면을 통해 알 수 있는 18세기 유럽 향수 문화와 제조 과정은 이야기의 사실감을 더한다.
‘향기’라는 달콤한 소재와 ‘살인’이라는 악마적인 행위의 절묘한 조합을 통해 그루누이 최고의 향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잔인하지만 탐미적으로 표현한 영화 ‘향수’.
관람하기를 강.력.추.천.
Commented by 카바론 at 2008/11/06 09:37
ㅡ "He is an 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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