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국 영화에서 강한 남성성을 보여주느 영화를 찾기란 쉽지않다. 이는 이 시대에서 여성성이 갖는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전체에서 강한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작품을 찾자면 곽경택 감독의 '친구, Friend'와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 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몇 되지 않는 남성성의 범주에 넣을 수 있는 영화가 한 편 더 있다. 바로 영화 '비열한 거리'가 그것이다.
기실(其實) 영화 속에서 강한 남성성을 나타내 주는 소재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주먹이다. 물론 한국 영화에서도 조폭으로 대표되는 주먹 영화들이 2000 년 대 초반 ‘조폭 마누라’ 시리즈의 이후 우후죽순(雨後竹筍) 쏟아져 나왔지만, 초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어설픈 코미디 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조폭’을 영화의 소재로 삼는 건 흘러간 옛 영화에서 떨어진 빵 조각이라도 주워 먹을 심산인 영화로 치부 받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영화 ‘비열한 거리’가 바로 시대의 저 켠으로 흘러간 식상한 조폭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식상한 소재를 두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식상한 소재라도 개성 있고 치밀한 구성을 거치면 신선한 소재로 바뀌기 마련이고, 이 영화 역시 그러한 미덕(美德)을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영화는 삼류 조직 폭력배의 2인자 병두의 이야기다. 조직 내 보스와 치고 올라오는 후배들 속에서 제대로 된 기회 한번 가져보지 못하고서 살아가는 것이 그의 삶이다. 게다가 홀어머니에 두 동생까지 돌봐야 하는 가난한 조폭의 모습은 정말 초라하기 그지없다. 다행히도 오락실을 하나 가지게 되나 싶었지만, 이마저도 보스를 대신해 감옥으로 가는 후배에게 빼앗기고 만다. 그러던 차에, 병두에게도 기회가 찾아 온다. 조직의 스폰서를 맡고 있던 황회장이 보스가 꺼리던 일을 자신에게 은밀히 부탁을 해 온 것이다. 미래를 보장할 테니, 자신을 괴롭히는 부장검사를 처리해 달라는 것. 병두는 고심 끝에 보스를 배신하고 황회장과 손을 잡게 된다. 이제는 더 이상 가족의 생계는 그의 걱정거리가 아니다. 거기에 첫사랑 현주와의 사랑에 영화감독이 되어 찾아온 친구 민호까지, 이제야 인생을 사는 것 같다. 하지만 사는 것 같은 삶은 자기 편이라 여기고 속내를 털어 놓은 친구 민호로 인해 무너지고 만다.
영화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성공 하고자 하는 욕망 속에서 사로 잡혀 살아간다. 그리고 그것이 이 영화 ‘비열한 거리’는 이야기를 풀어 나갈 수 있게 해준다. 영화는 먹고 살 거리에서 비롯된 욕망이 커져가는 모습과 그 욕망 때문에 파멸(破滅)해 가는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영화 속에서 갖는 병수의 모습이다. 병수는 조폭으로 분명히 사려져야 할 존재이다. 하자만, 사업을 해나가는 황회장에게 있어서는 없어서는 안될 필수불가결한 존재이다. 거기에 첫사랑인 현주에게 조폭인 병두는 두려움의 대상 이지만, 성공을 갈구하는 영화감독 친구에게는 조폭인 병두는 매력적인 소재이다. 없어져야 할 대상인 동시에 꼭 필요하기도 하고, 두렵지만 매력적인 존재가 영화 속의 조폭의 모습이다.
이제는 칼이 아닌 계산기로 사업을 일궈야 한다고 영화 속 황회장은 이야기하지만, 결국은 병두 같은 주먹을 통해 부와 지위를 누리는 모습을 통해, ‘세상에서 성공하려면 딱 두 가지만 알라고. 나한테 필요한 사람이 누군지, 그 사람이 뭘 필요로 하는지’ 라고 병두에게 이야기하는 황회장을 모습에서 진짜 옳은 것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에 꽃미남 청춘 스타로만 여겼던 배우 조인성의 재발견은 영화 속 이야기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한층 더 해준다.

영화 ‘비열한 거리’ , 강력하게 관람을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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