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문득 생각을 했다. 왜 나는 영화를 볼까? 그저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서? 아니면  영화 관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동 때문에? 혹은 선호하는 배우를 스크린에서 보는 즐거움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찰나에 영화 ‘파이란, Failan'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이 영화 ‘파이란, Failan'은 영화 이야기 못지않게 사족이 많은 영화다. 영화가 많은 호평 속에 개봉된 건 2001년 이 맘 때쯤이다. 하지만 수많은 호평 속에 정작 흥행에는 실패했고, 내가 영화 ’파이란, Failan'을 그로부터 6년이 지나서다.

 6년 전 영화에 대한 호평이 그대로 내게 적용되었음인지, 하루를 멀다하고 변화하는 대중의 취향이 그대로 이식되어 있는 내게도 영화 ‘파이란, Failan'은 시시각가 변하는 트렌드의 모습과는 별개로 즐거움과 감동을 주었다. 유행하는 트렌드에 따라 비슷한 내용을 가지고 봇물처럼 쏟아져 나와 대중의 선택을 강요하는 엔터테이먼트 산업의 모습과는 일단 다른 것 같았다. 의도치는 않은 것으로 보이나 트렌드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 점이 시간의 흐름이 가져다주는 촌스러움을 극복할 수 있게 한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그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중국 배우의 출현에 영화 무대로는 익숙지 않은 인천과 동해의 색다른 모습까지...


 영화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인천 뒷골목 3류 깡패 강재와 위장 결혼을 통해 한국 생활을 하게 된 중국인 파이란의 이야기다. 적지도 않은 나이에 오락실에 죽치고 앉아 주인에게 건달 행세하며 삥이나 뜯고, 고등학생들에게 포르노를 팔다 잡혀 구류나 살다 오는 허접쓰레기 같은 d 3류 깡패 강재의 모습이다. 같이 건달 세계에 들어온 친구는 조직의 우두머리가 되어 있지만, 정작 강재는 친구를 형님이라 부르며 깡패 조직 후배들에게 무시당하고 받으러간 일수돈 마저 머리채 뜯기며 받아 내지 못하는 주접 말고는 깡도 끈질김도 없는 볼 것 없는 딱 3류 깡패다. 그런 강재의 유일한 희망은 배를 한 척 사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그저 희망을 뿐 그의 일상은 그럴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보여 주지 못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강재가 속해 있는 패의 보스이자 친구인 용식에게서 부탁을 받게 된다. 몸싸움 끝에 상대 조직원을 죽인 자신의 죄를 대신해 주면 배 한 척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단다. 희망의 씨앗이라곤 눈곱만치도(‘눈꼽’이 아닌 ‘눈곱’이 사전상 정확한 표현이다) 찾아 볼 수 없는 강재였기에 오랜 고민 끝에 수락하기로 한다.

여기서부터 영화의 진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때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 파이란이 강재의 인생에 나타지만 정작 사라진다. 몇 년 전 그저 돈 몇 푼 벌려고 위장 결혼 했던 중국인 파이란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다. 그저 서류 상의 남편일 뿐 한 번 제대로 본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던 아내의 죽음인 만큼 강재에게 그 소식은 별 감흥을 일으키지 못한다. 그저 그에게는 귀찮은 일을 뿐이다. 서류상의 남편이라는명목 때문에 자신 말고는 연고가 전혀 없는 파이란의 죽음을 수습하러 별로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여행을 떠나게 된다.

 파이란은 전혀 기댈 곳도 없고 잡아줄 이도 없이 이 땅 위에 혼자 서 있는 순진한 중국 여인이다. 자신의 서류 상 남편인 강재가 3류 양아치 건달 줄도 모르고 그저 연신 머리를 조아리며 ‘강재씨는 친철합니다, 친철합니다’를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절실히 건네는 여인이다. 그리고는 별 뜻 없이 강재가 준 빨간 스카프가 진짜 정인의 증표나 되는 듯이 그녀는 막막하고 답답한 마음을 붉은 스카프로 꽁꽁 싸매고는 스카프에 의지해 고난한 삶을 살아가다가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아마도 강재가 감옥만 갔다 오면 늘 꿈에 그리던 배 한 척을 가지고 고향을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없었더라면 영화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허접에 주접에 꼴사나운 강재였더라면 파이란은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서류상의 아내였겠지만, 고향에 대한 희망이 생기자 강재의 눈에 파이란이 자신에게 보여준 맹목적인 사랑과 믿음을 통해 가졌던 희망을 알아채기 시작한다.

 그리고 파이란을 찾아 떠나는 시간이 조금씩 흐를수록 강재는 자신과 파이란이 대상은 달랐지만 ‘그리움’을 서로 가지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강재의 그리운 대상이 고향 바닷가이었음은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건달 세계에 함께 들어온 친구는 조직의 보스가 되어 자신의 자리를 굳히고 있지만 자신은 정작 아직 그 밑에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한 채 후배들의 무시와 멸시나 당하며 누구와도 진실한 유대감을 갖지 못한 채 각박한 삶을 강재는 살아왔다. 파이란 역시 외지에서 홀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외로움에 떨던 모습이 고향과 가족을 그리워하던 강재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거기에 강재가 파이란에게 남긴 빨간 스카프가 아무 도움도 되지 못한 남편일지라도 친절한 강재씨를 떠올리게 하는 대상이었다면, 파이란이 죽고서 강재에게 남긴 거울과 편지는 한 번도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았던 자신의 삶을 반추할 수 있게끔 해주는 매개물이 됨으로써 영화의 감동을 더 한다.

'감사합니다. 당신은 친절한 사람입니다.' 라며 비뚤비뚤 서투르게 써내려간 파이란 글씨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내 파이란을 정말 사랑하게 되어버린 강재의 울음을 끌어내고, 아울러 생각지도 않은 일을 통해 돌연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는 이야기가 결국 이 영화 ‘파이란’이 내게 주는 메시지를 알 수 있었다.


"강재씨… 고맙습니다.
강재씨 덕분에 한국에서 계속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 사람들 모두 친절합니다.
그치만 가장 친절한 건 당신입니다.
왜냐하면 나와 결혼해 주셨으니까요..."


 Commented by 겨울나무 at 2007/05/25 23:23  
기린님 소중히 모시고 갑니다 건강 하세요^^*
 Commented by 고무풍선기린 at 2007/05/26 17:01 
모시고 갑니다 는 말씀이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만, 

고맙습니다. ^^


반응형

'Cinem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0) 2007.06.06
피아니스트, The Pianist  (0) 2007.05.28
광식이 동생 광태  (0) 2007.02.21
투사부일체  (0) 2006.12.10
인사이드 맨, Inside Man  (0) 2006.11.26
반응형


 작년 5월 20일부터 9월 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위대한 세기_피카소라는 이름으로 피카소전이 열렸다. 많은 시간이 흘러 사실 그 때의 전시회에서 받은 생생한 느낌이 퇴색되어 버렸지만, 아직까지 그 때 느낌을 기록해 놓지 못한 탓에 지금 그 때의 느낌을 떠올려 본다.


 나는 사실 미술에 대해 무지한(無知漢)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심미적 감상을 통한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커녕 낫 놓고 ㄱ 도 모른다는 속담이 가리키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못하는 것은 미술 작품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통해 작가의 상상력과 열정을 엿볼 수 있게 되고, 그러한 상상력과 열정이 내게도 전해져 내가 하는 일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채, 행사 마지막 날이었던 9월 30일 토요일에 위대한 세기_피카소전을 관람했다. 그런데 이런 아뿔싸... 같이 관람하기로 한 친구가 약속시간을 조금 넘겨서 도착해 버렸다. 거기에 관람 마지막 날에 몰린 인파까지 미술품 전시회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관람이 버거운 나에게 약속 시간을 엄수하지 못한 친구에 대한 짜증과 정상적인 관람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든 인파로 인한 불쾌함만이 가득했다


 
사실 나는 큰 기대를 가지고 전시회에 갔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대표적 입체파 추상화가라고 하는 피블로 피카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무엇이라고 정확히 꼬집어 이야기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분명히 그의 독특한 시각과 열정을 그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러나 작품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작가의 시각과 상상력은 고사하고 스스로 느끼는 감흥조차도 느끼지 못한 채 관람객 인파 속에 파묻혀 전시회장을 나와야만 했다.

 전시회를 통해 보았던 것은 매스티지, massitge 라 일컬을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관람객들의 모습이었다. 누구라도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20세기의 작가 피카소전을 관람했다는 관람객 스스로의 뿌듯한 자부심이라고 할까그의 작품 감상을 통해 얻는 즐거움 보다는 그저 전시회 관람에 참여를 즐기는 것 같다고 해야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을 테다.

 거기에 아직도 까막눈을 벗어나지 못한 내 미술품을 보는 시각까지. 내게는 즐거움과 행복함 보다는 아쉬움이 가득한 그런 전시회였다.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