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의 지나친 환호는 나와 같은 냉소주의자를 흥분하게 만든다. 그래서 분명히 있을 환호의 이유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코웃음치기 십상이다. 영화 ‘왕의 남자’ 역시 그랬다. 500백만, 600백만 관객이라던 것이 어느덧 1000만이 넘어서고 1200백만을 넘기는 한국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는 이야기나 여자보다 더 예쁘다는 이준기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그 인기의 이유를 살펴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동성애 같은 흥미가 대중의 코드와 운 좋게 맞아 들어간 행운의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탓에 1200백만의 관객이 든 영화였지만 과감히 외면했다.
그러다가 정말 우연치 않게 영화를 봤다. 아마도 찾아서 봐야 했으면 보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틀기만 하면 되고 때마침 할꺼리 없이 심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감독의 이름을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감독 이준익. 이 사람의 전작 ‘황산벌’을 봤고, 영화 ‘황산벌’은 내게 아무런 인상도 남기지 못한 시간 때우기에도 아까운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웬.걸…. 영화 ‘왕의 남자’를 보다 보니까 전작과는 완전 딴판이다. 나와는 전혀 코드가 맞지 않는 코미디가 아니라, 이건 완전히 정치 영화다. 권모술수(權謀術數)가 횡횡하며 그 속에 사람의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조선시대 정치 영화다. 그런데데도 웬.걸. 흥행에 성공했다. 그것도 1200백만의 관객을 넘어섰다. 영화나 연극 흥행의 바로미터가 되어 버린 20대 젊은 여성의 감성과는 전혀 맞지 않을 것만 같아 보이는 조선시대 정치 이야기가 그들의 선택을 받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준기. 이런 놀라움을 만든 요인 중 하나는 바로 이 배우 이준기이다. ‘미녀는 석류를 좋아해~’를 TV 속 광고에서 떠들더니 그것이 유행어가 되어버린 그. 수 많은 여성들이 그의 외모를 보고 예쁘다느니 잘 생겼다느니 하는 것에 전혀 동의 할 수 없지만 내 기호가 곧 대중의 기호일 수 없는 법. 피바람 몰아치는 궁궐 속 알력 싸움의 진지함이 가져오는 딱딱함은 배우 이준기가 보여주는 공길의 모습에서 이내 부드러움으로 바뀌고 말았다. 거기에 카리스마 있게 나오는 장생은 젊은 여성들은 물론 남성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가히 평단과 대중의 찬사를 받기에 아낌 없는 영화다. 편견 탓에 보지 않고 지나갈 뻔 했지만, 명불허전(名不虛傳)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걸 여실히 보여준다. 탄탄한 구성에 적절한 배우의 연기와 캐스팅이 얼마나 많은 관객을 열광시킬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 영화였다. 추천하기에 아낌 없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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