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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상고사 (개정판)

신채호 저 | 도디드 | 20121017

 


읽기 전


 얼마전 중국 청두(成都)에 있는 진사(金沙) 박물관을 관람하고 왔습니다. 진사 유적지는 2000년대 이후에 발굴된 유적지로 기원전 1000년을 전후(前後) 한 고대 촉나라 문명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중국 친구들에게 진사 문화에 대해 물어 봤을 때 잘 알지 못했습니다. 내심 어떻게 자신의 역사를 그렇게 모를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다가, 저는 과연 기원 전 1000년을 전후로 한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알고 있는지에 대한 자문(自問)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런데 그 시대의 역사에 대해 저 역시 잘 알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제 나라 역사도 알지 못하면서 남의 허물을 비웃은 것 같아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제가 잘 알지 못하는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이 책 조선상고사를 읽어볼 생각을 했습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인류 사회의()”비아(非我)”의 투쟁이 시간으로 발전하고 공간으로 확대되는 심적(心的)활동 상태의 기록이니, 세계사라 하면 세계 인류가 그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요, 조선사라 하면 조선 민족이 이렇게 되어온 상태의 기록이다.

 

무엇을라 하며 무엇을비아라 하는가? 깊이 팔 것 없이 얕이 말하자면, 무릇 주관적 위치에 서 있는 자를 아라 하고, 그밖의 것은 비아라 한다. 이를테면 조선인은 조선을 아라 하고 영().(:러시아).(:프랑스).() 등을 비아라고 하지마는 영...미 등은 저마다 제 나라를 아라 하고 조선을 비아라고 하며,무산(無産)계급은 무산 계급을 아라 하고 지주나 자본가를 비아라고 하지마는, 지주나 자본가는 저마다 제 붙이를 아라 하고.무산 계급을 비아라 한다.

 

이뿐 아니라, 학문에나 기술에나 직업에나 의견에나, 그 밖의 무엇에든지 반드시 본위(本位)인 아가 있으면 따라서 아와 대치되는 비아가 있고, 아 가운데 아와 비아가 있으면 비아가운데에도 아와 비아가 있다. 그리하여 아에 대한 비아의 접촉이 잦을수록 비아에 대한 아의 분투가 더욱 맹렬하여 인류 사회의 활동이 쉴 사이가 없으며, 역사의 전도가 완결될 날이 없다. 그러므로 역사는 아와 비아의 투쟁의 기록인 것이다.

 

지금까지 신채호의 조선상고사는 제대로 읽어 본 적이 그저 역사란 인류 사회의 () 비아(非我) 투쟁으로 시작하는 총론만 수박 핥기 식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조선상고사 제대로 읽어 생각을 실천할 있어서 매우 기분이 좋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습니다.


 

읽고 나서

 

책을 읽으면서 가졌던 처음의 기대는 앞서 말했듯이 삼국시대 이전의 역사에 대한 무지 타파였습니다. 단군 왕검의 고조선(古朝鮮) 치우 천왕(値遇天王) 비롯해 제가 알지 못하는 고조선의 역사에 대해 조금이라도 친숙해지기를 바랬지만,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것은 고조선 보다는 고구려(高句麗) 백제(百濟) 친숙하지 못했던 역사였습니다.

 

우선 고조선의 역사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제일 이유는, 제가 가진 상고사에 대한 무지함 때문입니다. 사전 지식이 전무(全無) 상태에서, 책의 본문에 상세하고 친절한 주석(註釋)마저 없으니, 전후(前後) 맥락(脈絡) 따져 가며 읽기는커녕, 내용을 따라 가기에도 벅찼습니다. 정말 부끄럽게도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단군왕검(檀君王儉) 시대부터 삼조선이라 불리는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 이야기까지, 저는 단군 신화 외에는 이전에 번도 접해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조선상고사 일독(一讀)하기는 했으나, 진정한 조선 상고사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無知)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고조선 서술에 있어 지금보다 상세한 주석을 포함한 다양한 해설서가 나오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고조선에 반해 고구려와 백제는 상대적으로 읽어 나가기가 수월했습니다. 정규 교육 과정 중에는 배운 삼국역사가 신라에 치우쳐져 있긴 했으나, 그래도 고조선에 비하면 고구려나, 백제에 대해 정규 교육 과정을 통해 배웠고, 그 외에 간간히 읽어 본 책이나 TV 드라마를 통해 본 내용들도 이 책 조선상고사에서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정규 교육 과정에서는 배운 적 없던 내용에 더 관심이 갔습니다. 대표적으로 고구려 시조 주몽의 아내인 소서노에 대한 이야기나 차대왕(次大王), 을파소(乙巴素), 광개토대왕(廣開土大王), 장수태왕(長壽太王), 그리고 연개소문(淵蓋蘇文)과 같은 고구려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과 고구려의 북진정책과 남진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

백제 또한 근구수왕(近仇首王), 해외 식민지, 부여성충(夫餘成忠) 그리고 부여복신(夫餘福信)과 같이 잘 알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새로이 알 수 있었습니다.

 

익히 알지 못한 고구려와 백제의 역사 외에도 책 전반부에 걸쳐 계속 볼 수 있는 책의 저자, 단재 신채오의 역사 의식 또한 제 눈길을 사로 잡았습니다. 중국의 체면은 살리고 치욕은 숨기는 춘추필법에 의거해 기술된 중국의 역사서 속 왜곡된 기술을 증거를 들어 비판하고, 또한 중화사상에 빠진 나머지 스스로 춘추필법을 따라 우리의 역사를 왜곡하고 축소했던 우리나라의 사대주의자들 또한 비판하였습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책이 쓰여진 일제 강점기 였던 시대적 배경을 따져보면 민족주의적인 시각에서 우리 역사를 자주적으로 기술한다는 것이 나라를 빼앗긴 우리 국민에게는 당연히 필요했을 터이지만, 현재 시점에서 보면 무조건적인 민족주의는 지양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그 당시 한중일 삼국의 시각을 전부 아울러 볼 수 있는 관점에서 살펴 보는 조선 상고사에 대한 해설서가 있으면 좋을 듯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는 전혀 익숙하지 못한 이두를 근거로 고대 지명을 고증하고 고대사 속의 우리 영토를 유추해 가는 서술을 이 책에서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두와 이두문에 대해 좀 더 깊이 있는 읽을 거리가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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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8. 영통 메가박스



영화 '암수살인'의 관람은 완전히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점심 약속이 생겨 영통에 나갔다가, 식사 후 잡혀 있던 일정이 취소되면서 여유시간이 생겼고,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 궁리를 하다가 생각난 것이 근처의 메가박스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감독이며 배우인지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른채 여유 시간과 맞는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 '암수살인'을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암수살인'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가 좀 독특합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물 영화라면 형사든 범죄자든 특정 시각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액션 신 (action scene)이 기본이 되기 마련인데, 이 영화 '암수살인'은 플래시백 (flashback)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범죄 현장에서 범죄 장면을 회상 할 뿐 형사와 범인 간의 추격전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간략한 영화 속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태오는 살인죄로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누나 한 명이 있기는 하지만 누나의 면회는 언감생심입니다. 태오에게는 그를 찾아올 사람도 관심을 가져 줄 사람도 없습니다. 더이상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태오는 형사인 김형민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은 총 7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자백을 하며, 형민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형민이 태오의 자백을 직접 듣기 위해 면회소로 찾오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태오가 형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직 형사가 듣기에 도저히 실제 범인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오의 진술 속 7건의 살인사건은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제 (謎題) 사건들이라 태오의 진술 외에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 마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라 현직 형사들에게는 노력 대비 얻을 성과가 별로 없는 사건들입니다. 그렇지만 형민은 태오의 너무나 디테일한 사건 진술에서 촉이 발동하여, 다른 형사 같았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계륵같은 태오의 사건들을 파헤쳐 볼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형민은 태오의 진술을 하나씩 되집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발생한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태오의 진술과 사건 현장에서 형민에게 보이는 것들이 놀랄만큼 정확합니다. 마치 그 자리에서 태오가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은 형민에게 태오의 진술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을 더 갖게 만듭니다.

 

하지만 강태오는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형민에게 자신의 밝혀 지지 않은 범죄를 고백하나 싶더니, 형민의 재수사를 통해 나오는 증거를 자신의 상고 재판에 활용해 자신이 사법부에서 판결을 받았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선고를 15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태오의 숨겨진 범죄를 밝히려다가 오히려 태오에게 이용 당하는 현직 형사 형민, 그렇습니다. 태오는 자신의 범죄를 적당히 흘려 형민의 관심을 유지하는 한편, 적절히 거짓도 함께 섞어 진실을 파헤치려는 형민을 방해합니다. 제게는 마치 교도소에서 형민을 상대로 두뇌 게임을 벌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태오의 진술은 개별 사건들의 시공간을 교묘하게 섞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그의 진술이 전부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은 태오의 진술은 그대로 따라가면 태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형민은 퍼즐 놀이를 하듯 조금씩 흘리는 태오의 이야기 속 진실에만 집중하느라, 그가 쳐놓은 함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연거푸 태오의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이거 못 믿으면 수사 못한다.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자.”

 


그러면서 형민의 수사는 흔들립니다. 수사가 계속되면 계속 될수록 태오가 처놓은 그물에 빠져, 태오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만 강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모를 태오의 진술과 형민을 도발하는 태오의 조롱, 그리고 같은 경찰 동료마져 형민에게 등을 돌리지만, 형민은 태오가 도발하며 던지는 실마리 속에서 태오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형민의 눈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철두철미한 태오이지만 희생자가 태오를 만나지 전에 한 수술의 흔적은 태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태오가 알지 못햇던 희생자의 수술 기록과 암매장된 시신의 수술 흔적이 일치함을 형민은 결국 밝혀 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극 중 강태오를 연기한 배우 주지훈의 뛰어난 연기력입니다. 배우 주지훈의 이전 작인 '신과함께2'까지만 해도 저는 그를 그저 극 중 흐름을 깨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을 가진 잘 생긴 남자 배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그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강태오를 연기한 배우가 주지훈이 아닌 배우 진선규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죄도시'에서 악랄한 조선족 범죄 조직원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 진선규의 모습이 이 영화 '암수살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왠걸, 배우 주지훈은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연기력만으로 그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없이 이렇게 완성도 있는 범죄물을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 치열한 각본 작업을 통해 이야기의 범위를 진짜 개별의 7건의 사건으로 넓히고, 그 속에서 잘 완성도 높은 잘 짜여진 두뇌싸움을 펼쳤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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