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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10. 8. 영통 메가박스



영화 '암수살인'의 관람은 완전히 즉흥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점심 약속이 생겨 영통에 나갔다가, 식사 후 잡혀 있던 일정이 취소되면서 여유시간이 생겼고, 여유시간을 어떻게 보낼 궁리를 하다가 생각난 것이 근처의 메가박스였습니다. 그래서 누가 감독이며 배우인지 그리고 무슨 내용인지도 전혀 모른채 여유 시간과 맞는 영화를 찾다가 이 영화 '암수살인'을 관람하였습니다.

 

영화의 내용은 '암수살인'이라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살인사건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이야기 전개가 좀 독특합니다. 살인 사건을 다루는 범죄물 영화라면 형사든 범죄자든 특정 시각에서 서로 쫓고 쫓기는 액션 신 (action scene)이 기본이 되기 마련인데, 이 영화 '암수살인'은 플래시백 (flashback)을 통해 사건이 발생한 현장으로 돌아가기는 하지만, 범죄 현장에서 범죄 장면을 회상 할 뿐 형사와 범인 간의 추격전 같은 것은 없습니다.

 

간략한 영화 속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강태오는 살인죄로 감옥에 투옥되어 있습니다. 가족이라고는 누나 한 명이 있기는 하지만 누나의 면회는 언감생심입니다. 태오에게는 그를 찾아올 사람도 관심을 가져 줄 사람도 없습니다. 더이상 희망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태오는 형사인 김형민에게 연락을 취해 자신은 총 7명의 사람을 죽였다는 자백을 하며, 형민의 관심을 끄는데 성공합니다. 그렇게 형민이 태오의 자백을 직접 듣기 위해 면회소로 찾오면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태오가 형민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직 형사가 듣기에 도저히 실제 범인이 아니고서는 말할 수 없는 디테일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태오의 진술 속 7건의 살인사건은 한 건을 제외하고는 모두 미제 (謎題) 사건들이라 태오의 진술 외에는 실체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공소시효 마저 지난 것들이 대부분이라 현직 형사들에게는 노력 대비 얻을 성과가 별로 없는 사건들입니다. 그렇지만 형민은 태오의 너무나 디테일한 사건 진술에서 촉이 발동하여, 다른 형사 같았으면 관심을 두지 않았을 계륵같은 태오의 사건들을 파헤쳐 볼 생각을 합니다.

 

그렇게 형민은 태오의 진술을 하나씩 되집어 나가기 시작합니다. 발생한지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태오의 진술과 사건 현장에서 형민에게 보이는 것들이 놀랄만큼 정확합니다. 마치 그 자리에서 태오가 현장에서 이야기를 들려 주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런 디테일은 형민에게 태오의 진술이 거짓이 아니라는 확신을 더 갖게 만듭니다.

 

하지만 강태오는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형민에게 자신의 밝혀 지지 않은 범죄를 고백하나 싶더니, 형민의 재수사를 통해 나오는 증거를 자신의 상고 재판에 활용해 자신이 사법부에서 판결을 받았다는 프레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선고를 15년에서 10년으로 줄이는데 성공합니다. 태오의 숨겨진 범죄를 밝히려다가 오히려 태오에게 이용 당하는 현직 형사 형민, 그렇습니다. 태오는 자신의 범죄를 적당히 흘려 형민의 관심을 유지하는 한편, 적절히 거짓도 함께 섞어 진실을 파헤치려는 형민을 방해합니다. 제게는 마치 교도소에서 형민을 상대로 두뇌 게임을 벌이는 것으로 보입니다.

 

태오의 진술은 개별 사건들의 시공간을 교묘하게 섞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얼핏 보기에는 그의 진술이 전부 사실처럼 보이지만, 실은 태오의 진술은 그대로 따라가면 태오에게 유리한 프레임을 만들 수 있는 구조로 짜여져 있습니다. 형민은 퍼즐 놀이를 하듯 조금씩 흘리는 태오의 이야기 속 진실에만 집중하느라, 그가 쳐놓은 함정을 발견하지 못하고 연거푸 태오의 계획대로 움직입니다. 

 

 “이거 못 믿으면 수사 못한다. 일단 무조건 믿고, 끝까지 의심하자.”

 


그러면서 형민의 수사는 흔들립니다. 수사가 계속되면 계속 될수록 태오가 처놓은 그물에 빠져, 태오가 만들어 놓은 프레임만 강화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모를 태오의 진술과 형민을 도발하는 태오의 조롱, 그리고 같은 경찰 동료마져 형민에게 등을 돌리지만, 형민은 태오가 도발하며 던지는 실마리 속에서 태오의 범죄에 대한 증거를 찾아내려는 노력을 거두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형민의 눈에 실마리가 보입니다. 철두철미한 태오이지만 희생자가 태오를 만나지 전에 한 수술의 흔적은 태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태오가 알지 못햇던 희생자의 수술 기록과 암매장된 시신의 수술 흔적이 일치함을 형민은 결국 밝혀 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극 중 강태오를 연기한 배우 주지훈의 뛰어난 연기력입니다. 배우 주지훈의 이전 작인 '신과함께2'까지만 해도 저는 그를 그저 극 중 흐름을 깨지 않을 정도의 연기력을 가진 잘 생긴 남자 배우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통해 그에 대한 이미지가 바뀌었습니다. 부끄럽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저는 강태오를 연기한 배우가 주지훈이 아닌 배우 진선규라고 생각했습니다. '범죄도시'에서 악랄한 조선족 범죄 조직원으로 인상적이었던 배우 진선규의 모습이 이 영화 '암수살인'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줄만 알았습니다. 그렇지만 왠걸, 배우 주지훈은 이번 영화에서 완전히 연기력만으로 그의 이미지를 바꾸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없이 이렇게 완성도 있는 범죄물을 영화를 만들었다는 점이 고무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더 치열한 각본 작업을 통해 이야기의 범위를 진짜 개별의 7건의 사건으로 넓히고, 그 속에서 잘 완성도 높은 잘 짜여진 두뇌싸움을 펼쳤더라면 더 재미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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