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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라는 제목을 보고는 누구나 그렇듯이 나도 영화와 노래를 떠올렸다.

 이영애와 유지태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 영화에서 공기 중에 사라져 버리는 소리는 녹음기에 담아두면 되지만 사랑은 녹음기에 담아둘 수도 없고, 변할 것 같지 않던 사랑이 변하고 이별하고 재회하면서 점점 사랑하던 시간은 멀어져만 간다. 사람들에겐 저마다의 봄날이 있고 봄날은 그렇게 사랑하고 잊혀진다. 그래서 나는 연극 ‘봄날은 간다’도 영화와 같이 그렇게 사랑하고 잊혀지는 이야기가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다. 물론 캔의 노래 ‘봄날은 간다’ 역시 잊혀짐이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런 기대를 가지고 연극 ‘봄날은 간다’의 극장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게 웬걸. 무대가 전부 잔디다. 게다가 객석의 의자 밑까지 잔디다. 그 덕분에 극장은 온통 풀 냄새가 가득하다. 그리고 그 풀 냄새는 극에 기대를 더 고조시킨다. 어떻게 연극의 이야기는 그렇게 사랑하고 잊혀질까 하고서.

 그렇지만 극의 내용은 내 예상과는 너무 다르다. 연극은 영화와는 아무관련 없는 전혀 다른 작품이다. 물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도 틀리다. 잔잔하게 그렇게 정적으로 옛날을 회상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 서로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만나 가족이 된 남자와 여자. 비록 피로 맺어지진 않았지만 같은 어머니를 둔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다. 아내지만 아픈 동생이었던 여자를 사랑한 남자 그리고 남자를 사랑한 여자, 또 이들을 쫓아다니며 자신의 이야기를 추억으로 이야기하는 어머니의 혼령. 이런 이야기를 지루하다 싶을 만치 서정적으로 극은 찬찬히 풀어나간다.

 분명 파란만장하고 질척하다 하지 않을 수 없는 어미의 삶이 그저 남의 이야기 하듯 담담하게 남매였던 부부의 이야기와 더불어 관객에게 전달된다.

 요즘 추세마냥 빠른 전개도 쿨한 인스턴스식 사랑이야기도 아닌 탓에 지루함마저 느껴지지만 이런 차분하고 잔잔한 맛도 연극을 보는 재미가 아닐까 싶다. 빠른 전개나 재미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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