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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룻 사람의 이름이고 책의 제목이고 공연의 제목이고 이 모두가 중요하다. 왜냐면 합리적인 판단 할 거리가 전무한 첫 대면에서 그것들이 중요한 판단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연극 ‘닭집에 갔었다’ 는 내게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연극이었다. 제목에서 주는 감도 그저 그랬거니와 생닭을 잡고 입으로 물어뜯는 모습의 포스터는 내 편견을 강화시켜 주었다.

 그런 상태로 관람하게 된 극 ‘닭집에 갔었다’. 그런데 이 연극은 시작부터 그간 극에서 볼 수 있었던 틀을 깬다. 보통 공연장에 들어서고 시작할 시간이 되면 어디선가 한 명이 쪼르르 달려 나와 공연의 시작을 알리며 휴대폰을 전원을 끄라는 말에서 시작해 틀을 벗어나지 못한 안내 문구를 알리면서 시작하기 마련인데, 이 연극 ‘닭집에 갔었다’ 는 공식적으로 그런 것이 없다.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되는 시장 통의 아저씨가 ‘골라 잡어 3천원~’ 의 호객 행위가 시작이었단 사실과 그 역시 극 중 배우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다.

 극은 재래시장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닭가게, 야채가게, 식당, 다방 그리고 그 가게의 주인들, 그리고 손님들과 시장을 지나가는 행인과 배달원, 장애인, 폐지를 수집하는 노인, 경찰과 같은 많은 사람들. 그들 사이의 이야기를 극은 보여 준다. 시장에서 닭집을 하는 제천댁의 남편이 지하철 사고로 목숨을 읽는다. 그런데 제천댁이 남편을 밀었으니 아니니 하는 소문이 시장에 퍼지며, 제천댁과 시어머니는 시장에서 싸우고 거기에 제천댁의 아들 종구는 가출을 하고 남편 사고를 조사하는 형사는 계속 시장에 모습을 보인다. 그렇지만 시장 사람들은 서로 의지해 가며 자신의 일에 열심이다. 시장 사람이건 손님이건 혹은 행인이건 모두가 자신의 삶에 바쁘다. 거기에 느닷없는 협박전화. 제천댁이 지하철역에서 남편을 미는 모습이 찍힌 테이프가 있다며 돈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전화에 응하는 제천댁과 협박범인 야채가게 순미의 남편인 양아치 상길.

 뭔가 뭔가 부조리한 듯하면서도 거기에 응하는 제천댁의 모습이나 제천댁과 그녀의 남편에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궁금해지는 관객. 하지만 시장은 늘 그랬듯 정신없이 북적이며 그 곳의 사람들도 늘 그랬듯이 바쁘게 살아간다.

 사실 이 연극은 무척이나 부산스럽다. 관객이 차분히 바라볼 수 있게 하기 보다는 뭔가 어수선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만든다. 사람의 삶이란 것이 결국은 그렇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런지 알 수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봤던 또 다른 연극 ‘검둥이와 검은 개들’에서 느꼈던 극에 대한 어려움은 별로 없었다. 부산스럽고 어수선한 바람에 되려 편하게 볼 수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예상을 뛰어 넘는 극의 모습이 주는 즐거움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연극이었지 싶다. 개인적으로는 연극에 대한 고정관념을 시작부터 깼고, 감각적 연출에 거기에 걸맞는 배우들의 열연까지 더 해진 좋은 공연이었지 싶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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