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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추말리기, 제목을 처음 보았을 때 무슨 제목이 이런가 싶었다. 거기에다가 20명에 달하는 출연진. 그리고 극단 민예 라는 뭔가 오래된 듯한 어감을 주는 극단까지. 어쩐지 연극계에 가장 큰 관객인 20대 여성층을 타켓으로 삼아 열리는 여타의 많은 연극들과는 뭔가 다를 것만 같았다. 그런 느낌을 가지고 극을 접했다.

 ‘~누구누구씨 보호자님, 아들입니다.’
지나치게 과장이다 싶은 간호사의 말로써 남아 선호 사상에 대한 재고찰과 생명경시 풍조에 대한 날카로운 현실풍자 그리고 저출산 시대의 출산 장려 메시지라는 맞는 말인 듯 싶으면서도 뭔게 생뚱맞은 것만 같은 메시지를 내세운 ‘고추말리기’는 시작되었다.

 우선 눈에 띄는 건 삼신할매와 저승사자 그리고 홍장군이다. 특히 내가 생각했던 거지 중의 상거지 보다도 더 허름한 모습에 지하철 녹번역을 헤메는 삼신할매와 저승사자는 정말이나 어이없었다. 우리 의식 속에 있는 근엄한 모습의 삼신할매와 저승사자의 모습에 일침을 가하기 위한 의도적 표현이라 할런진 몰라도 극에 대한 지식이 쥐뿔만큼도 없는 내게는 연출자가 표현 할 수 있는 삼신할매와 저승사자의 이미지가 저것 밖에 되지 않나 싶었다. 거기에 극의 중심인물인 홍장군. 나는 처음에 무슨 참견 좋아하는 동네 아저씨 역인 줄 알았다. 용한 점쟁이라면서도 단무지에 라면을 즐긴다는 그의 모습은 누군가 말했던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지질이도 궁상맞아 보이지 밖에 않았다. 아직도 연극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홍장군의 열정적인 연기는 대단했다.

또 다른 어이없는 설정 중의 하나. 탤런트 이미연이 맡았던 드라마 속 명성황후가 이 연극 ‘고추말리기’에서 태어나는 남자 아이를 죽이는 낙태귀의 전생이란다. 그리고 그 낙태귀의 이름은 미연이다. 마지막으로 태어날 남자아이 12명의 고모들 꿈에 나타나 퍼즐 맞추기 하듯 말을 끊어서 12명의 딸과 홍장군에게 하고 사라진 할아버지에 대한 장면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에는 어이없는 장면이었다.

 남아 선호에 대한 문제와 그로인한 성비 불균형에 대한 우려, 생명 경시에 대한 경고,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야 하는 불쌍한 영혼들에 대한 것들이 조금은 코믹하기도 하고 어이없다 싶은 설정들을 통해서 말하고 있는데 아쉽게도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과 나름대로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렇지만 지금의 인구문제는 남아선호보다는 저출산으로 인해 인구가 줄어드는 것이 더 당면한 문제가 되어버린 시대적인 상황과는 벌써 거리감이 생겨버렸고. 결정적으로 제시한 남아선호 사상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나름의 고민을 통한 해법을 제시하려 하기 보다는 남자아이가 태어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 버려서 처음에 주장하려고 했던 것들은 정작 얼렁뚱땅 넘어가버린 듯한 느낌이다. 머리 속에 결혼이나 자녀 같은 단어가 멤도는 상황에 내가 처해 있었더라면 연극 ‘고추말리기’가 더 생생하고 재미있게 보였을 것 같았지만 지금 당장의 내 상황과는 너무나도 다른 이야기였기에 아쉽게도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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