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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가끔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 있고 찬사를 보냄에도 불구하고 관람하지 못한 영화가 수두룩하다는 걸 느끼곤 한다. 그런 생각을 갖게 하는 영화중에 하나가 바로 ‘8월의 크리스마스’이다. 영화를 개봉했을 때 놓쳐 버렸다는 것이 관람하지 못한 가장 큰 이유이겠지만 그 외에도 8월과 크리스마스라는 별로 연관성 없어 보이는 단어의 조합이 제법 논리적으로 보이는 걸 더 선호하는 내 구미와 일치하지 못한 점이 개봉한지 8년 만에 영화를 보게 만들지 않았나 싶다.

 영화는 놀라우리만큼 절제되어 있었다. 배우들의 연기도 과장의 군더더기는 살펴보기 어렵게 절제되어 있고 그들의 대사도 그리고 그들을 쫓아가는 카메라마저 필요없는 움직임은 최소화하고서 이야기를 풀어 간다. 그렇게 감정의 극대화와 감정의 주입화를 절저히 배제한다. 그냥 일상을 차분히 영상을 옮길 뿐이다. 차분한 느낌의 영상은 맑고 투명한 수채화 같다는 느낌이랄까?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삶이라는 역시나 다소 달라 이는 것들 속에서 펼치지는 일들이 맑고 투명한 수채화처럼 보여진다.

영화는 불치의 병으로 곧 생을 마감해야 한다는 걸 아는 정원이라는 이름의 한 사진사와 우연히 정원과 친해진 주차 단속요원 다림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그 둘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같은 건 아니다. 맑고 투명하다고 했지만 다소 무뚝뚝하다고 해야 할까? 그런 탓인지 영화는 정원의 병명조차 알려주지 않지만 정원은 늘 웃는 모습이다. 그저 정원의 죽음이 멀지 않았음은 술을 마신 후 파출소에서 보이는 난동이나 아버지에게 비디오 작동법을 가르쳐주다 화가 나서 나가는 모습, 그것을 다시 글로 써서 남겨두는 모습, 사진관에서 필름 현상법을 일일이 사진으로 찍어 그것을 하나하나 기록으로 남겨두는 모습, 친구들과 사진 찍는 모습 그리고 자신의 영정 사진을 찍는 모습 같은 것들에서 차분히 암시할 뿐이다. 이에 반해 다림은 정원의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뭔가 아쉬움이 남는다.

 사실 배우 심은하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었는데, 늦게나마 ‘8월의 크리스마스’를 통해 배우 심은하는 발견한 것 같다. 이렇게 예쁜 배우인줄 이제야 알았다. 그리고 8년의 시간을 느껴지게 하는 것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는데 그 중에서 디지털카메라로 인해 우리 주위에서 자취를 감춘 필름 카메라와 주차단속차로 쓰인 티코. 지금 이야기였다면 디카로 인해 정원과 다림이 만날 일 조차 없었겠지?

 아무튼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는 내가 본 좋은 영화 중의 하나로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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