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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춘예찬’ 듣기에도 보기에도 얼마나 기대되는 그리고 희망 가득한 말인가. 이런 제목을 가진 연극이라면, 단어가 풍기는 기대와 희망만큼이나 화사하고 파릇파릇한 느낌의 극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청춘예찬’은 내 예상을 철저히 거부하는 내용의 연극이었다. 대략의 내용은 이렇다.

청년은 22살이다.
아직 고등학교 2학년이며 졸업을 할지 말지는 아직 고민 중이다.
청년은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는다.
그의 집에는 두 가지 일만 하는 아버지가 있다.
하루 종일 누워서 TV보기. 이혼한 아내에게 용돈 타러가기.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홧김에 뿌린 염산 때문에 눈이 멀었고, 지금은 재가하여 안마사로 일한다.
청년은 어느 날 친구의 사촌누나 간질이 일하는 다방에 놀러 간다.
그녀와 술을 마시다가 함께 잔다.
청년은 함께 살자는 여인을 받아들인다.
방 한 칸에 세 사람. 아버지와 청년은 술잔을 기울인다.
청년의 무분별한 방황에 아버지는 화를 낸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간질 발작을 일으키고, 흥분하고, 욕하고.
청년과 간질 사이에 아이가 생긴다.
아버지는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해 천정에 야광별을 붙인다.

제목인 ‘청춘예찬’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내용이다. 극 속의 영민은 청춘을 예찬하며 지낼 만한 사정이 못된다. 영민은 문제아 고교생일 뿐이고, 그저 술로 소일하는 무능력한 아버지와 이혼 후 안마사로 일하는 맹인 어머니 그리고 간질을 앓는 다방 여종업원은 청춘예찬은 커녕 희망이 보이지 않는 밑바닥 인생의 남루한 일상이 연속인 사람들뿐이다.

그럼에도 아이러니 하게도 극의 제목은 ‘청춘예찬’이다. 지지리 궁상맞은 청춘의 예찬이라니...

하지만 비록 쿨(cool)한 청춘은 아니더라도 그들 역시 분명히 청춘이며 그 속에서도 청춘을 예찬하려 야광별을 붙이는 그들의 모습은 결국 버겁지만 그래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지금의 청춘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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