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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주 저 | 말글터 | 2016 8 29

 

 

1.

"그게 말이지. 아픈 사람을 알아보는 건 더 아픈 사람이란다." 상처를 겪어본 사람은 안다

 

나는 엄마가 늘 내가 아픈 걸 혹은 아플까봐 걱정하는 것은 순전히 자식에 대한 애정이라 생각했다. 이 구절을 보고 나니, 자식에 대한 애정 뿐만 아니라 나를 낳고서 부터 계속해서 아팠던 엄마의 경험이 자식에 대한 걱정을 더 하게 만든 것이었다.

 

 

2.

흔히들 말한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만 그건 작은 사랑인지도 모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큰 사랑이 아닐까

 

내 사랑은 아직도 작은 사랑인가보다. 상대가 원하는 걸 해주기는 하지만, 내가 싫어하는 걸 상대가 원할 때면 결국은 해주면서도 싫은 티를 꼭 낸다. 상대가 싫어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부끄럽지만 그게 아직 내 사랑의 크기이다.

 

 

3.

특히 난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는 일을 처리할 때면 그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든다. 시간과 추격전을 벌이다가 막다른 길에서 붙잡히는 느낌이 들면 스스로가 참 못마땅하다. 그리고 가끔은 뭐가 뭔지 갈피를 못 잡겠다. 정말 바쁜 것인지, 아니면 '바쁘다'는 걸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은 것인지....

 

나는 일을 할 때면 항상 시간에 쫓긴다. 시간에 쫓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여유가 있어도, 굳이 일의 퀄리티를 들먹이며 스스로를 몰아 붙인다. 그리고 결국에는 버거워 한다.

 

참으로 한심하고 우스운 일이다. 아니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몰아 붙이는 걸 누군가는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내 자신은 알기 때문이다.

 

 

4.   

단테의 <신곡 神曲> 지옥 편을 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나온다. 지옥문 입구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독사가 우글거리고 불길이 치솟는 곳만 지옥일 리 없다. 희망이 없는 곳, 아무런 희망이 없는 막막한 상황이 영원히 지속하는 곳, 그곳이 진짜 지옥이다.

 

그렇다. 세상에 꺾이고 꺾여도 희망만은 잃지 말아야 한다.

 

늘 그렇듯이 소중한 진리는 너무나 당연한 것들이다.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라도 모래밭에서 바늘 찾아도 불평을 늘어 놓기 보다는 바늘을 찾으러 달려 들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운 좋으면 바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혹시 누가 아는가, 바늘 만큼의 가치는 아닐 지라도 조그마한 쇠붙이라도 찾을 줄.....  

 

 

5.

영화나 동화 속 사랑은 기적을 만들어내지만, 현실의 사랑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사랑은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

사랑은 때때로 무기력하다. 사랑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기는커녕 오히려 사랑 때문에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다만 사랑은 동전의 양면 같은 성격을 지닌다.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들이밀기도 하지만, 그 구렁텅이에서 건져 올리는 것 역시 사랑이라는 이름의 동아줄임을 부정할 수 없다.

우리를 망가뜨리지 않는 사랑은 우리를 강하게 만든다. 사랑의 가치를 부정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나는 아직도 미성숙해서 칭얼거리는 내 사랑에 푹, 꺾이곤 한다. 꺾이고도 체면치례 탓인지, 별 일 아닌 척 한다

제일 좋기로야 내 사랑이 칭얼대면 다 안아주는 것이 제일이겠지만, 칭얼대는 내용마저 판단의 영역에서 놓고 가름질 하는 내 미성숙함은 그럴 아량이 되지 못한다. 그래서 차선책으로나마 칭얼거림에 꺾이면서도 괜찮은 척 하는 것이리라. .

내게서 사랑과 희망을 찾고 싶어서라는 내게 칭얼댄다는 것을 알고 있다. 얼른 칭얼거림을 다 보담아 안을 수 있는 아량을 가져 내 사랑이 내게서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6. 

에세이에는 여백이 많은 책일 뿐만 아니라, 내게 많은 여백을 만들어 주는 책이다

어린 시절, 나는 책은 응당 지식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되어야 한다는 식의 훈육을 받고 자랐다. 그래서 그 시절 소설과 수필은 제대로된 대접을 받지 못했다. 그 때문일까,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에세이를 읽을 때면 그 즐거움과 재미와는 별개로 책에 있는 여백과 바쁜 현실에 만들어 주는 여백으로 마음 한 켠이 불편했다.

물론 나도 안다. 세상 모든 종이가 학창 시절 숙제로 제출하던 깜지 마냥, 활자로 빽빽히 채워질 필요는 없다. 그리고 지식의 전달만이 책의 목적도 아닐 뿐더러 책에서도 삶에서도 여백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교육이 힘도 만만치 않아 간단하게 하는 메모마저 깜지처럼 만들어 버리는 내 자신을 보면, 에세이를 읽으며 느끼는 불편함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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