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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진 지음 | 시그마북스 | 20098


 

1.     유가(儒家)와 장자(莊子)

 

 이 책 장자 21세기와 소통하다를 이야기하려면 먼전 언급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공자의 학설과 학풍을 신봉하고 연구하는 유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전통적으로 유가의 학풍이 우리나라의 사상과 윤리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아무도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물론 저 또한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어서, 제 가치 체계와 윤리 체계에서도 유가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중은 다른 어느 것보다 크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지금껏 학교 교육을 통해 배운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 장자의 사상을 떠올려 보면 유가적 입장과는 사뭇 다릅니다. 그렇지만 알고 있는 것들이라곤 사회나 윤리 교과서에 읽었던 몇 줄이 전부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이러한 아쉬움에 대한 반동(反動)적 요소가 큽니다. 그래서 이 책을 통해 장자의 사상에 대한 조금 더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제가 신봉(信奉)하는 유가의 사상과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알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2.     핵심내용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도가(道家)의 대표로 손꼽히는 장자의 사상을 짧은 몇 문장을 통해 그 진수(眞髓)를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렇지만,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문구를 통해 미흡하게나마 장자의 가르침을 비교적 간단하게 배울 수는 있습니다. 장자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단어는 ()()’입니다. 장자는 유가에서 추구하는 성(), (), (), (), 그리고 인()과 같은 가치는 사회가 기대하고 요구하는 가치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주입되거나 요구된 가치를 넘어선 참된 가치를 구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그에게 있어 도()는 어떤 대상을 욕구하거나 사유하지 않는 무위(無爲)이고, ()은 사람들 내면의 순수한 정신, 맑은 영혼을 왜곡시키는 윤리의 허울과 틀에 박힌 도덕적 가치를 부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장자는 사람들 내면의 순수한 정신, 맑은 영혼을 왜곡시키는 껍때기의 윤리와 틀에 박힌 도덕적인 가치들을 부정한다.

 

그런 가치는 대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신념과 명분으로 나타난다. 명분이란 사회생활에서 중요한 것이다. '논어'에서 공자가 말한 대로 "명분이 없으면 말이 순조롭지 않고, 말이 순조롭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자가 볼 때 '명분이란 본질의 껍데기'이며 실천을 위해 걸어놓은 기치일 뿐이지 실천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러므로 신념이나 명분에 매달리다 보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이 장자가 말하는 요점이다.


 '충성', '믿음', '청렴', '정의' 등의 명분에 목숨을 걸고 스스로 죽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명분을 남에게도 들이대면 그 폐해는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전통'이라는 이름 하에 껍데기 풍습을 고집하거나, '민주'라는 신념 속에 질서를 무시하는 잘못 역시 거짓 가치로 포장된 명분의 폐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럴 듯한 가치를 띤 명분 앞에서 객관적인 상황 판단을 못한다는 점이다. 깨끗한 게 좋다고 하면 더러움이 전제되고 만다. 더럽다고 여겨지는 것이 의식되기 때문에 깨끗함에 기울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가치가 옳다는 신념을 갖다보면 남의 그른 것을 용인하지 못하고, 심지어 남을 바로잡으려는 일을 서슴지 않게 된다.                          - 24


그렇다면 그런 가치관의 신념이란 죽음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인 것인가. 장자가 볼 때 사실 이런 신념은 배운 것이 작용한 것이고 밖으로부터 요구된 가치일 뿐이다. 사람들은 그렇게 하는 것이 나라와 민족, 사회와 이웃, 가족과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이는 이욕과 집착의 변형된 허울일 뿐 모두 하늘로부터 부여된 순수한 삶을 왜곡하거나 파괴하는 것이다. 실제로 역사상의 많은 정치적 재앙들은 대개 이런 집착의 산물이었다. 동서양 역사를 통해 국가의 지도자를 죽이거나 지도자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람들, 남을 죽이거나 자신을 죽인 사람들은 사실 명분과 신념의 신봉자들이었다. 그것은 이욕과 집착의 다른 얼굴일 뿐이다. 장자가 주목한 것은 이렇게 외부로부터 주입되거나 요구된 가치를 넘어서 참된 가치를 구현하는 것이다. 좋다고 '인식된' 가치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25~26

 

도척의 부하가 도척에게 물었다.

"도둑질에도 도가 있습니까?"

도척이 대답했다.

"어디에도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맞히는 게 지혜(智)이다.

침입할 때 앞장 서는 것이 용기()이다.

나올 때 맨 나중에 나오는 게 정의()이다.

도둑질이 잘 될지 안 될지를 아는 게 지식()이다.

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게 어짊()이다.


현실에 충실하다는 것이 때로는 부당한 일에도 '성실'하고 '신의'있게 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최선을 다한다'는 일이 남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욕망은 명분으로 포장되고, 명분은 언제나 지식으로 윤색된다. 지식으로 윤색되었지만 내용은 진정한 선행이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 128



3.     책을 읽고 난 후 생각


  저는 유학(儒學)만큼 수신(修身)하기에 좋은 학문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 속의 경직(硬直)으로 인한 답답함은 내심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으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유가의 사상에 대한 대안(代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유가와 도가를 서로 대립적(對立的)인 관계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립보다는 상보적(相補的)인 관계로 생각하되, 먼저 유가의 사상적 기반을 잘 다진 후에 도가의 사상을 취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정 수준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채 도가의 사상을 신봉하면 자칫 잘못하면 유가의 사상을 부정하기 위한 겉멋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책을 읽다가 보면 ‘~없다’, ‘~아니다의 형태로 이야기를 끝맺는 경우가 않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습니다. 정형(定形)적 표현보다 부정(否定)적 표현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부정적 인식이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있는데, 이러한 한계에 대한 인식과 고려는 충분했는지 역시 궁금했습니다. 하지만 신발을 사러 가서 신어볼 생각은 하지 않고 발을 재려고 자부터 찾는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당장 어려운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데도, 도와주는 실천에 앞서 경전의 말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따지려는 경직된 자세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 새겨 들을 만합니다.

http://withthink.textcube.com2009-09-25T02:56:51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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